“무역분쟁 심화할수록 식량안보 지켜야”

  • 등록일 2025-04-09
[사진]“무역분쟁 심화할수록 식량안보 지켜야”



미국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한 이후, 필자의 네덜란드 현지 유튜브 구독 채널은 관련 내용으로 가득 찼다. 2일(현지시각) 개시한 미국의 상호관세 발표는 이같은 흐름에 기름을 부었다. 더욱이 유럽이 보복관세 적용으로 강경하게 대응하면서 이곳에서도 관련 내용이 매일같이 언론매체를 장식하고 있다.
다만 현지 언론이 전하는 분위기는 유럽 전반의 분위기보다는 조금 절제된 느낌이다. 미국 관세 부과에 대한 보복조치로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미국산 청바지, 위스키, 고급 오토바이에 최대 50%의 보복관세를 발표했다. 그러나 최근 카스파 벨트캄프 네덜란드 외무장관은 트럼프정부의 조치와 관련해 “단호하면서도 점잖고, 불필요하게 사태를 키우지 않는 대응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동시에 남미공동시장(메르코수르) 국가들과의 무역협정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고, 이미 협정을 맺은 한국·캐나다와 협력을 더욱 강화하겠다는 방침을 내놓았다.
네덜란드 농민들의 목소리 또한 우려나 분노와는 다소 거리가 멀었다. 최근 졸업논문 연구과제의 하나로 현지 여러 농민과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다. 그중 다수의 농민들, 특히 낙농업 종사자들은 EU와 네덜란드 정부의 과도한 환경규제 정책을 가장 큰 도전과제로 꼽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 이전 네덜란드 농민의 규제 완화 시위를 공개 지지한 적도 있어 호감을 피력한 농민도 있었다.
네덜란드에선 이번 무역 분쟁을 조금 다른 관점에서 우려하고 있다. 옵크 훅스트라 EU 기후 집행위원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이번 무역 분쟁이 유럽의 식량안보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면서 “네덜란드의 농업이 전략적으로 관리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헤르 코프만스 전 하원의원은 3월 트럼프 대통령이 자국 농민에게 미국 내에서 소비할 농산물 생산을 준비하라고 언급한 점을 지적하면서 “무역 갈등이 식량 전쟁으로 번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EU는 자체 생산 역량을 강화하는 데 우선순위를 두고, 변화하는 세계 질서에 보다 유연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생각해보면 미국이 관세 대상으로 쉽게 거론하는 품목들은 대체로 ‘대체재가 있는 것’이다. 독일 자동차와 프랑스 와인이 대표적인 예다. 그러나 정작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로 미국 내 달걀 가격이 급등하자 유럽·한국 등 동맹국에 달걀 수출을 요청하며 고전 중이다. 미국의 자동차 관세로 큰 타격을 입은 일본에서도 민생에 더 충격을 준 건 다름 아닌 폭등한 쌀값이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곡물자급률은 2023년 기준 22% 수준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의 보도자료에선 밀·대두 등 주요 곡물에 대해 미국 수입의존도가 높은 것으로 분석됐다.
대미 무역 흑자가 큰 우리나라로선 관세 협상·설득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 불안정한 세계시장 속에서 언제든 터질 수 있는 식량안보 위기에도 끊임없는 관심을 가져야 한다. 트럼프발 상호관세가 세계 식량 전쟁으로 비화할 수 있는 만큼 자국 내 생산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는 코프만스 네덜란드 전 하원의원의 말이 예사롭지 않게 들린다.
천민조 네덜란드 AERES 응용과학대학 4학년

<출처  :  농민신문 >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