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4년째 네덜란드에서 공부하고 있다. 네덜란드 중부에 위치한 아에레스(AERES) 응용과학대학교에서 국제식품경영을 전공했고, 지금은 졸업 인턴십으로 프리슬란트 지역의 ‘보트마스 팜앤푸드’에서 일하고 있다. 인턴십 도중 같은 인턴으로 일하는 네덜란드 학생을 만났는데, 그는 필자와 다른 교육 경로를 밟아 농업을 배우고 있었다. 그는 엠베오(MBO)라고 불리는 직업교육 과정을 공부하는 학생이었다.
네덜란드에서는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학업 성적, 교사 평가, 시험 결과를 바탕으로 직업교육 준비(VMBO), 응용과학대학 준비(HAVO), 연구중심대학 준비(VWO) 등 3가지 중등교육 과정 중 하나로 진학한다. 이른 시기에 교육 경로가 정해지는 것은 다소 엄격하게 보일 수 있지만, 현지에선 적성에 맞춘 선택으로 받아들인다. 또한 진학한 후에 성과를 보이면 상위 교육 과정으로 이동할 기회도 열려 있다.
필자는 HAVO에 이어지는 고등교육인 응용과학대학(HBO)에서 적용 중심의 교육을 받았다. HBO 과정에서는 인턴십이 필수고, 졸업 논문도 연구보다는 현장에 적용할 수 있는 기획이나 사례 분석이 주를 이룬다. 반면 MBO 과정은 실습에 더욱 집중한다. 인턴 친구는 자신의 학교에서 기계 조작, 토양 관리, 작물 재배 등을 배운다고 했다.
연구중심 대학(WO) 과정은 가장 학문적이다. WO에서 유학 중인 친구는 평소 논문·실험·테스트로 바쁘다고 이야기했다. 농업분야로 예를 들면 새로운 작물 연구나 농업기술 개발이 연구중심 교육의 핵심이다.
흥미로운 점이 있다면 교육 과정이 나뉘어 있어도 그것이 단순한 서열이 아니라는 점이다. 인턴십을 함께하는 친구는 실무중심 교육이 자신에게 적합했고, 직접 농업을 배우고 싶어 MBO를 선택했다고 했다. 그는 HBO로 진학할 기회가 있었지만 자신의 진로에 맞는 과정을 유지했다. 네덜란드에선 ‘좋은 대학’이 성공의 필수조건이 아니라 자신에게 맞는 길을 가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한국 사회의 ‘명문대 중심’ 사고방식과는 차이가 있다.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다닌 필자는 사실 WO로 옮기고 싶어 고민한 적이 많았다. ‘명문대’ 졸업장에 욕심이 있어서다. 그러나 몇차례 인턴십을 경험하면서 네덜란드에서 존중받는 것은 ‘어디에서 배웠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배웠느냐’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돌이켜 보면 이곳에서 만난 친구들은 각자의 선택에서 자신의 길을 확신하고 있었다. 학업 수준을 떠나 각자의 결정과 역할이 존중받는 현지 분위기가 부러웠다.
네덜란드가 농업 강국이 된 것은 단순히 뛰어난 연구기관 덕분만은 아니다. 바헤닝언대학과 같은 연구기관(WO 과정)이 이론적 토대를 마련하고, 이를 실용적으로 적용하는 컨설팅 인프라(HBO 과정)가 있으며, 농업 현장에서 최적화를 이루는 것은 농민(MBO 과정)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론·실용·현장이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기에 네덜란드 농업은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 각 과정을 선택하고 그 결정을 존중하는 분위기와 각자 역할에 집중한 교육체계가 지금의 농업 강국 네덜란드를 만들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천민조 네덜란드 AERES 응용과학대학 4학년
<출처 : 농민신문 >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