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선조들은 자연을 중시하고 채소를 가꾸거나 꽃을 키우면서 위안을 찾았다.

오랜 역사 속에서 인류는 농업과 같이 존재해 왔으며, 치유농업이라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가까이 있는 자연이나 농업을 이용해 건강을 회복해온 역사는 길다. 아마도 우리 인류의 조상들이 한 곳에 정착생활을 하면서부터 먹을거리를 해결하기 위해 주변에 먼저 식량이 될 식물과 과일나무를 심었고, 여유가 생기면서 관상을 위한 나무와 꽃도 옮겨 심어 정원이 주는 정신적인 안정감을 느꼈다.

중세시대의 유럽의 병원에서는 정원을 가꾸거나 소규모의 텃밭을 조성하여 환자들의 재활에 활용하였는데 환자들이 풀냄새를 맡고 새소리를 들으며 나무 밑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게 하였다.

동양에서도 자연 속에 꽃과 나무, 채소를 가꾸면서 심신의 건강과 학문에 전념한 사례들이 많다.

  •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요양원에서는 부속농장이나 정원을 두어 농산물을 생산하고 남은 것은 팔기도 하였으며 농사와 정원 가꾸기가 환자의 정신·신체 재활에 도움을 준다는 기록이 존재한다.

  • 미국

    현대 정신의학 및 작업치료의 권위자였던 ‘벤자민 러쉬’는 1812년 자신의 저서 ‘마음의 질병(The Diseases of The Mind)에서 원예활동이 정신 건강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연구 결과를 언급하였다.

  • 네덜란드

    농장의 규모가 작고 가족농장이 많은 네덜란드의 경우 1990년대 후반부터 치유농장이 출현하였고, 국가의 지원으로 치유농장 수가 급격히 증가하였다. 농장주는 이용자와 다양한 보험 계약 체결로 치유농장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농장주는 치유서비스의 품질 관리를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 이를 지원하기 위한 노력으로 지역적, 전국적인 지원 조직이 형성되었다.

  • 우리나라

    우리 선조들은 자연을 중시하고 채소를 가꾸거나 꽃을 키우면서 위안을 찾았다는 여러 기록들이 존재한다. 고려시대 명 문장가였던 이규보(1168~1241) 선생은 강화도에서 오이, 가지, 순무, 파, 아욱, 박의 여섯 가지 채소를 텃밭에 키우면서 그 활동을 시로 표현하며 위안을 찾았다고 한다.

    조선시대 양대 성리학자인 퇴계 이황 선생과 율곡 이이 선생도 자연 속에 꽃과 채소를 가꾸면서 심신의 건강을 유지하며 학문에 전념하였고 조선 후기의 실학자로 오랜 유배기간을 보낸 다산 정약용 선생도 인간생활에 꼭 필요한 것을 구하기 쉽고, 방풍(防風)이 잘되고, 정신적 치유효과를 주는 산수(山水)의 조건을 중시하였다.

오늘날과 같이 장애인의 사회 복귀, 작업요법의 활용 등으로 전문화되기 시작한 것은 1950년대 이후이다. 자연을 중요한 치료 수단으로 간주하는 생활 및 근로 공동체가 갈수록 증가하였는데, 특히 아일랜드와 영국에서 캠프힐 운동(Camphill movement)의 영향을 통해 치유 목적의 공동체가 많은 인기를 누렸으며 장애인들을 위한 원예치료 프로젝트를 여러 개 만들어 멘토와 전문 치료사들이 주간에 지도를 하는 형태로 운영하였다.

치유농업의 발전은 각 국가별 문화의 차이와 보건, 사회, 교육서비스의 구조로 각각 다르게 나타난다. 비록 구체적인 시작점을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현대적 의미의 치유농업의 출현은 1960년대로 추정할 수 있다.

출처 : 「 한국·네덜란드 치유농업 총서」 Ⅰ 치유농업의 이해 - Part1 : 치유농업과 치유농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