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80주년을 앞두고 거리 곳곳에서 태극기가 걸린 모습을 볼 수 있다. 태극기는 늘 우리 삶과 함께했다. 일제강점기를 끝낸 독립의 순간에도, 학창 시절 교실에도, 2002년 월드컵 때 승리에도. 그러나 우리가 매년 게양하는 태극기는 처음부터 지금의 모습은 아니었다. 140여년에 걸친 숱한 변천을 통해 오늘의 형태에 이르렀다.
◆고종이 제작한 태극기…일제강점기 땐 모양 제각각=태극기의 시초는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을 앞두고, 역관 이응준이 고종의 명을 받아 배 안에서 종이에 펜으로 그린 데서 비롯됐다. 이후 1883년, 박영효가 제작한 태극기가 정식 ‘국기’로 제정됐다. 그러나 1910년 경술국치로 국권을 잃으면서 일제에 의해 사용이 금지됐고, 1919년 3·1운동을 계기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통해 독립운동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했다. 광복 이후 북한도 1948년 7월까지 태극기를 사용했으나, 같은 해 인공기를 제정한 뒤로는 사용하지 않는다.
태극기는 시대에 따라 형태도 변해왔다. 현재와 같이 건곤감리의 배열이 건(乾) 3, 리(離) 4, 감(坎) 5, 곤(坤) 6으로 통일된 것은 1949년의 일이다. 최초의 태극기는 회오리 모양의 태극 문양과 4괘를 그렸다. 흰 바탕은 우리 민족을, 빨강은 양, 파랑은 음을 상징해 우주의 조화를 나타냈다.
특히 일제강점기에는 태극기의 모양이 제각각이었다. 당시에는 태극기를 소지하는 것만으로도 혹독한 처벌을 받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기억에 의존해 그렸다. 독립운동가 남상락 선생의 자수 태극기는 4괘의 배치가 달랐고, 안중근 의사의 혈서 태극기는 건곤감리 자리마다 ‘대한독립’이라는 글씨가 붉은 피로 쓰여 있었다. 고광순 의병장이 을사늑약 이후 만든 ‘불원복 태극기’는 4괘가 180도 뒤집힌 모습이었으며, 1923년 상하이 임시정부 시절 사용된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태극기’는 국기가 세로로 배치돼 있었다.
이래원 국기홍보중앙회장은 “그 시절에는 태극기를 그리는 법을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어 각자 기억 속 모습대로 그릴 수밖에 없었다”며 “그렇게 기억을 통해 그려낸 태극기야말로 가장 순수한 정답일지도 모른다”고 밝혔다.
◆가장 오래된 태극기는 ‘주이 태극기’=현재 현존하는 실물 태극기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은 미국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이 소장한 ‘주이 태극기(1883년)’다. 국내에 보관된 태극기 중 가장 오래된 것은 ‘데니 태극기’로, 1886년 고종의 외무 고문(외교관)으로 근무했던 오웬 니커슨 데니가 1890년 고종으로부터 하사받은 것이다. 이 태극기는 1981년 데니의 후손이 기증해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돼 있다.
우리나라에서 보존 중인 태극기 중 16점은 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그중 ‘김구 서명문 태극기’는 1941년 김구 주석이 미국으로 가는 미우스 오그 신부에게 건네며 광복군 지원을 부탁하는 친필 서명을 남긴 태극기다. ‘경주 학도병 서명문 태극기’는 한국전쟁 당시 17세 학도병이 출정 전 각오를 적고 서명한 것으로, 시대의 비장함을 담고 있다. 이외에도 ‘남상락 자수 태극기’, ‘불원복 태극기’ 등이 등록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최근 화제가 된 ‘진관사 태극기’는 일장기 위에 태극과 4괘를 먹물로 덧칠해 항일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2009년 진관사 부속 건물인 칠성각에서 보자기에 싸인 독립신문류 19점과 함께 발견됐다. 이는 독립운동을 전개했던 백초월 스님이 숨긴 것으로 추정된다. 6월4일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식에서 우원식 국회의장으로부터 ‘진관사 태극기’ 모양의 배지를 받으며 다시 주목받았다.
태극기 변천사를 보여주는 전시도 꾸준히 열리고 있다. 현재 서울 노들섬에서는 ‘데니 태극기’를 비롯해 일제강점기와 광복 이후의 태극기 등 시대별 변화를 담은 대형 태극기 16점이 전시되고 있다. 또한 국가유산청은 광복 80주년을 맞아 서울 덕수궁 돈덕전에서 ‘빛을 담은 항일유산’ 특별전을 열어 ‘진관사 태극기’를 비롯한 항일 유산 110여점을 공개하고 있다. 서울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광복 80주년 기념 특별전 ‘태극기, 함께해 온 나날들’을 이달 8일부터 11월16일까지 연다.
한수 대한민국역사박물관장은 “대한민국 국민으로 세계인과 함께 살아가는 지금, 태극기에 담긴 기억을 나누며 우리가 지닌 힘과 가능성을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박준하 기자 june@nongmin.com
<출처 : 농민신문 > [바로가기]